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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9 13:34

<스토너> 존 윌리엄스 도서관에서

가끔 부모님 집을 방문하면 틀어놓은 텔레비전 소리가 너무 커서 귀가 먹먹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연로하신 아버지의 청력이 심하게 나쁘기 때문이다. 일찌감치 마련해둔 보청기는 익숙하지 않아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눈앞에서 인사를 하기 전까지는 누가 왔는지도 모르신다. 등을 돌린 채 텔레비전을 향해 꾸부정하게 앉아 있는 뒷모습을 볼 때마다 사람을 난청의 침묵 속에 밀어넣어 고독하게 만드는 노화의 짖궂음을 생각한다. 아버지는 다른 사람과 교류할 수 없는 마음의 아픔과 회한을 난청의 벽 속에서 조용히 인내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고독과 인내의 모습이 어쩐지 스토너와 닮았다.

이야기는 특별히 성공적이었다고 보기 어려운 대학교수 스토너의 죽음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야기의 시계는 그의 출생 시점으로 다시 돌아가 특별한 것 하나 없는 이 스토너라는 사람의 일생을 하나하나 짚어나간다. 스토너가 성장하여 영문학도가 된 후 결혼하고 종신교수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의외로 평범하다.

스토너라는 인물은 천성이 선량하고 인내심이 있으며 성실하다. 실력 없는 대학원생 워커를 타협하지 않고 낙제시키고 그를 후원하는 지도교수인 로맥스와 평생을 대립하게 된 것도 그의 학문적 성실함과 무관치 않다. 선량한 천성 덕분에 그의 인생이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고 두 사람은 서로의 대화를 단절하는 것, 즉 소통을 하지 않는 것으로 관계를 이어나가게 된 것 같다. 이런 단절이라면 사람 사이에서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리 큰 문제도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스토너에게 있어서 문제는 가까운 사람들과 소통이 잘 되지 않았고 그것이 그의 고독감의 본질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야기 내내 주변의 인물들과 소통이 잘 되지 않는 스토너가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농부가 될 것을 기대하며 대학에 보낸 부모님에게 영문학으로 전공을 바꾸게 된 것을 알리거나 상의하지 않았다. 그의 전공 선택에 영향을 미친 영문학 교수였던 아처 슬론에게 그가 느꼈던 교감이 무엇이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가 사귄 몇 안 되는 친구들과의 교류는 금요일 저녁 기계적으로 만나 맥주를 마시는 일이었으며 인류를 위해 1차 대전에 뛰어들었던 친구들과 달리 그가 입대하지 않은 이유 역시 분명하지 않았다. 그의 행동이나 의사결정은 그냥 그럴려니 하는 양해의 수준이었던 것 같다. 소통의 부재는 스토너와 이디스의 관계에서 분명해진다. 처음 만난 이디스에게 사랑을 키우고 청혼을 하는 스토너와 유럽여행을 포기하고 부모님의 허락으로 결혼을 받아들이는 이디스는 마치 벽에 갇힌 상대방을 대하는 형국이다. 결혼 후 후회와 좌절감을 스토너에게 표출하는 이디스의 모습은 결혼을 통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사람의 뒤늦은 히스테리로 비쳐졌다. 두 사람은 육체와 정서가 완전히 분리되고 단지 아기를 갖기 위한 행동만으로 남은 일그러진 사랑을 보여준다. 결혼하고 가정을 꾸렸으며 안정적인 종신교수의 자리를 얻었지만 스토너의 인생이 불안정하고 고독하게 느껴졌다.

스토너가 인생에서 평범한 일상을 깼던 시기는 바로 젊은 여강사 캐서린과 사랑에 빠진 때이다. 하루종일 그녀와 사랑을 나누고 대화를 하며 그는 그동안 타인에게 친밀감이나 인간적인 따스함을 느껴본 적이 없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가 자신에 관해 인생에서 처음으로 깨달은 사실일 것이다. 캐서린은 그에게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기 위해서는 사랑에 빠져보아야 한다고 말해준다. 학과장의 권력을 쥔 로맥스의 계략에 의해  캐서린을 떠나보내는 시련을 겪으면서도 꾸준히 강의에 매진하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나이에 비해 늙어버린 몸뚱이이다.

그의 나머지 인생이 그런 깨달음을 얻은 뒤에도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야 비로소 그는 자신이 인생에 대해 무엇을 기대했는지 묻는다. 그는 인류의 일원으로 붙잡아줄 친밀한 우정을 원했고, 결혼을 통해 다른 사람과 연결된 열정을 느끼고 싶었고 사랑을 원했고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음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그것이 모두 실패로 끝났다고 인정했다. 뒤늦은 회환을 밀어놓고 관조의 자세로 눈을 감는 그의 모습에서 평온을 느낀다.

이 소설은 1965년 발표 후 거의 잊혀졌다가 50년이 다 되어 다시 주목을 받아 유럽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반세기의 세월을 건너뛰어 많은 독자들의 호응을 받을 수 있었던 저력이 어디에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최근에 씌여진 것 같은 낡지 않은 표현이나 언어구사도 인상적이었지만 다른 어느 때보다도 사람들과의 소통이 흔해진 요즈음 여전히 소통의 결핍으로 고통받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소통의 부재를 고독과 인내로 성실히 견뎌낸 스토너가 던진 인생의 울림에 대해 많은 이들이 공감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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